메뉴 건너뛰기

설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1]

by이일례 2016.10.07 13:20
  • 조회수111 views
  • 댓글 0comments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

 

출 3장 1-12절

 

I. 도입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가? 혹은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얼마나 사랑하는가? 우리의 사랑의 방식은 무엇일까? 우리가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기전에 먼저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II. 본론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모세를 만나주신 하나님.....하나님은 모세를 향하여 ‘신을 벗으라!’ 말씀하신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명령하신다. 그분의 요청은 모세가 선곳이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다. 왜 거룩한 곳인가? 어떤 곳이 거룩한 곳인가? “왜 거룩한 곳을 상기 시키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계신 곳이면 거룩한 곳이다. 신을 벗으라는 명령에 관하여 학자들은 ‘본래의 상태 그대로의 발로 디뎌야 하는 곳’에서 신을 벗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경외심을 가지고 신을 벗어야 한다.... 그것이 다일까?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1-10절까지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 하나님 자신을 소개 하시고 당신의 계획을 브리핑하고 계신다. 

그런데 매우 일방적이다!!!

 

"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을 벗으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

....................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우리의 눈에 띄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개인적인 혹은 사적인 것에 관하여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분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앞만 보고하고 계신 것 같다.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뜻을 보여 주는 것일까?

 

하나님! 저기요~~ 여기 저 모세거든요ㅠㅠ 저는 몇십전 전에 히브리인을 보호하려다가 사람을 죽인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미디안 제사장 사위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거든요ㅠㅠ

저의 삶이 좀 누더기 걸친것 같거든요... 제가 지금 숨어지내는 신분이거든요ㅠㅠ

 

설상가상으로 하나님은 동문서답하는 것 같다...

 

12절에서 하나님의 응답은 이렇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여기까지!!!! 정말하나님은 동문서답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이아닐까????

 

 

다음에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1. 사도행전 5장38-42; 두 가지 조건

        사도행전 5장38-42; 두 가지 조건       우리 각자가 집을 짓는다고 하자. 집을 지을 장소, 그곳이 해변가인지 숲속인지...혹은 시골 한적한 곳인지... 도심지인지 다를 것이고 또한 짓는 방식과 사용되는 제제와 색채 등등이 천차만별로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집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동일할 것이다. 집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너지지 않는 안전함이지 않을까? 특별히 우리 각각의 인생을 집을 짓는 것으로 비교해보자. 우리의 인생도 이와같다... 가장 안전한 삶...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날 때 후회 없는 삶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헤르만 헷세의 소설 ‘싯타르타’를 아는가? 예를 들면 헤르만 헷세는 그의 소설, ‘싯타르타’에서 삶을 사랑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도들을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을까? 사도행전 5장은 38-3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그렇다면 사람으로부터 나서 무너지는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무너지지 않고 안전한 삶은 무엇일까? 사도행전 5장은 두가지 사건으로 설명한다.   [본론] 여기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두 가지 사건이 등장한다. 1-11절까지의 첫 번째 사건과 12절이후 두 번째 사건이 그렇다. 12절이후 두 번째 사건의 사건을 먼저 설명해 보자.   12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인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한다.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이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란다.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는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   사도행전 5장20절에서,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말한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사도행전 5장21절에서,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친다. 그들이 정말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기 전에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여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옥문을 열고 ‘사도들아 수고한다. 내가 하나님의뜻에 따라 문을 여는것이니 어서 나오거라...’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끌어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끌어내다라는 헬라어는 ‘evxagagw,n ’이다. 무슨 뜻일까?(führte sie hinaus, taking them)   새벽에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사건의 경과를 알리 없는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한다.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2. 사도행전 5장은 그 유명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부부이다. 그들은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에 두기로 부부끼리 결정한 것 같다. 그런데 이들 부부의 끝은 죽음이었다. 그런일에 죽음으로 갚는다면, 그런 하나님은 이해하기 힘들다. 정말 이것을 말하는 것일까? 주석서들의 노력들이 가히 칭찬할 만하다.   [결론 및 적용] 우리는 사도행전 5장의 2가지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1. 두사건의 중심에게는 가장 특징적인 핵심어가 있다. 1.1 첫 번째 사건에서는,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에 두기로 하고 사도들에게 가져오자, 베드로가 정색을 하고 말한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장 3절) 여기서 볼수 있는 것처럼 첫 번째 사건에서 베드로는 아나니야를 향하여, “사탄이 네마음에 가득하다”고 말하고 있다. 3절에서 베드로는 먼저 아나니야를 향하여 ‘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그리고 이어서 9절에서 베드로는 그의 아내 삽비라를 향하여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sunefwnh,qh;sumfwne,w agree;)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 이처럼 우리안에 하나님을 두지 않는순간 그곳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사탄이 가득 체우고 우리를 하나님을 속이는자 성령을 속이는자(3절)로 만든다. 1.2 그렇다면, 두 번째 사건의 핵심어는 무엇일까? 그것은 29절에서 찾을수 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

    by 이일례 2017.05.23 1 Comments
  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출 3장 1-12절   거룩한곳이니 신을 벗으라는 것은...... ‘신을 벗으라!’ 본래의 상태 그대로의 발로 디뎌야 하는 곳; 경외심을 가지고 신을 벗어야 한다.  왜 거룩한 곳인가? 하나님이 나타날 때 동반하는 자연현상... 그것 때문일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위한 효과 음향만은 아닐 것이다.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선곳을 거룩한 곳으로 선언하며 ‘신을 벗으라!’라고 명령하시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의 얼굴을 가리우는 상황, 그것을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장인 미디안 제사장이 섬기는 다른 신.... 그리고 살인자의 삶....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은 그를 괴롭게도 힘들게도 ...그를 껌딱지처럼 따라다니는 “....이런사람”이란 꼬리 표를 내려 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방식이다!! 여러분에는 어떤 꼬리표가 있는가?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 꼬리표를 내려 놓아야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어떤 꼬리표가 있을까? 우리 젊은이들은 열심히 산다. 헬조선이란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인정하고 살아도 실패는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 뜻하지 않게 다른 방향을 향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가? 우리가 부끄러운 꼬리표를 갖게 될 때에도 혹은 실패할때에도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하여 하고 계시는 말씀, ‘신을 벗으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질퍽한신..도무지 걸을수 없는 신을 왜 신고 있는가? ‘신을 벗으라!’ 라는 말에 순종하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은 우리를 새로 시작할수 있도록 한다!! 모세처럼 말이다!!          

    by 이일례 2017.01.20 0 Comments
  3.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1]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   출 3장 1-12절   I. 도입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가? 혹은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얼마나 사랑하는가? 우리의 사랑의 방식은 무엇일까? 우리가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기전에 먼저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II. 본론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모세를 만나주신 하나님.....하나님은 모세를 향하여 ‘신을 벗으라!’ 말씀하신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명령하신다. 그분의 요청은 모세가 선곳이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다. 왜 거룩한 곳인가? 어떤 곳이 거룩한 곳인가? “왜 거룩한 곳을 상기 시키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계신 곳이면 거룩한 곳이다. 신을 벗으라는 명령에 관하여 학자들은 ‘본래의 상태 그대로의 발로 디뎌야 하는 곳’에서 신을 벗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경외심을 가지고 신을 벗어야 한다.... 그것이 다일까?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1-10절까지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 하나님 자신을 소개 하시고 당신의 계획을 브리핑하고 계신다.  그런데 매우 일방적이다!!!   "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 ....................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우리의 눈에 띄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개인적인 혹은 사적인 것에 관하여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분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앞만 보고하고 계신 것 같다.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뜻을 보여 주는 것일까?   하나님! 저기요~~ 여기 저 모세거든요ㅠㅠ 저는 몇십전 전에 히브리인을 보호하려다가 사람을 죽인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미디안 제사장 사위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거든요ㅠㅠ 저의 삶이 좀 누더기 걸친것 같거든요... 제가 지금 숨어지내는 신분이거든요ㅠㅠ   설상가상으로 하나님은 동문서답하는 것 같다...   12절에서 하나님의 응답은 이렇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여기까지!!!! 정말하나님은 동문서답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이아닐까????     다음에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by 이일례 2016.10.07 0 Comments
  4.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필로그]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필로그]   우리는 세례 요한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례요한이 살고 간 그 시간, 그 요단강가에 몰려든 사람들! 지친 식민지 생활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꿈꾸던 그들에게 진리를 선포한 세례요한! 그리고 실제로.... 그 몰려든 백성들은 요한의 요청대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고 척박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수 있었던 사람들!   그 요단강 ..... 그 사람들 사이에, 그곳에 세례요한이 있었다. 세례요한은 진리의 길을 제시하는 자였다... 그가 전하는 진리는 "예수"였다.   그는 진리이신 예수를 전하기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친 사람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지킨 사람이었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고백하며  주님께 주연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주의 영원한 조연의 위치에 선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세례요한처럼 주의 길을 예비하는 남다른 길을 걷고 싶지 않은가? 나는 남다른 길을 걷고 싶다.     진정한 주연으로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조연의 자리에 서야 한다. 예수께서 주연이고 우리는 조연이다. 세례요한 처럼 말이다. ....우리가 조연일 때 그 역할을 소명의식과 감사함속에 잘 감당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 "주의 길을 예비하라" 외치는 세례 요한의 길이 단지 조연처럼만 보이는가? 별로 근사하지 않아 보이는가? 정말그럴까? 우리가 주님의 조연이라면 생각은 달라진다.   나는 내 삶의 주연이지만 동시에 주님앞에서는 영원한 조연으로 살고 싶다. 그분이 나를 위한 그분의 생명을 주셨다는데 조연이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그분의 조연이라면 이미 충분히 황홀하지 않겠는가?    

    by 이일례 2016.04.13 0 Comments
  5.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제 2막]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제 2막]   막 1장 1-8절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본보기로서 세례요한 모습을 보면........ 세례요한의 삶을 정리해보자! <1>메뚜기와 석청을 먹는다. <2>낙타털 옷을 입는다. 가죽 띠를 띤다..... <3>예수님과 관련하여 그는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고백한다. <4>그의 고백은  또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물로 세례를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길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광야에서 외친다는 의미에서]일상의 삶속에서 가난한자의 모습과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푼다는 의미에서]신앙의 모습, 진리를 증언하는 자의 삶의 모습으로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세례요한의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광야에서의 상황을... 가난하고 나약하고 세상과 거리가 먼 우울한 생활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다. 이것은 자신의 위치, 자신의 자리를 잘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의(큰 뜻을)위해서 작은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가슴속에 다 담아들수 없는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서 그는 기꺼이 광야로 가야 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아는 사람! 세례요한은 진리이신 예수의 길을 예배하는 삶을 살기위해서 늘 의연하고 당당하했다.     이전에 (2015년 3월 9일 경) 티비에서 안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이 일본 수상을 방문하는 모습이  몇 일간 뉴스의 화면을 장식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수행원은 수상을 우산으로 받치고 있었고 우산도 없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비맞는 다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통역사였다. 그 통역사는 최고의 엘리트이고 최고의 교육과 훈련은 받은 사람으로 자기 나라에게 가장 통역에 뛰어난 유능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수상옆에서 비를 쫄딱(?)맞고 가는 모습이 내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활을 잘 수행하기 위하여 그는 비맞는 것을 대수롭지 여기는 것 같았다.   자기 자리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모습이었이다.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자이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고백하는 세례요한 모습은 정말 주의 길을 예비하는자의 모습이다. 주님의 위치와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요한의 모습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by 이일례 2016.04.13 1 Comments
  6.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제 1막]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제 1막] 막 1장 1-8절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가? 각각 좋아하는 타입들이 있겠지만 대략 3-5초 정도에 사람의 첫인상이 결정된다고 한다. 3-5초 사이에 저 사람이 사귀고 싶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이것이 ‘첫인상의 법칙’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외모를 치장하는데 공을 들인다. 그러나 첫인상의 함정은 늘 있기 마련이다. ......거두절미하고 누군가가 첫인상과 비례해서 그가 가진 내적인 부분까지 맘에 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겉과 속이 제대로인 사람을 소개 한다. 그의 이름은 세례요한이다.   세례요한은 그의 가슴속에 진리를 품은 사람이었다. 시대를 읽고 척박한 시대를 향하여 참 진리를 외치는 속이 찬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우리는 지금 두 번째 사순절을 보내면서 마가복음을 묵상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나는 사건은 마가복음 1장의 세례요한의 이야기이다.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말하고 있다. 세례요한의 삶과 그가 외치는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세례요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세례를 베푼 것이다. 요한이 세례를 주었다는 사실에 많은 비중을 두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름 요한에 세례가 덧 붙여 있다. 그리고 그가 준 세례는 임박한 종말론적 심판을 지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 그의 모습중에 우리의 눈에 띄는 것은 요한의 설교에 대해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왔다는 점이다.   역사학자 요세푸스도 강력한 민중운동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백성들이 세례 요한의 설교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본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을까? 백성들은 무엇에 이끌리어 이처럼 세례요한에게 나아왔는가? 그들은 무엇을 꿈꾸며 나아왔을까?     한가지씩 짚어보자! 지금 우리 사회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웬만한 일에는 감동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불감증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광경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가끔 볼수 있는 장면이 맛집에 줄서있는 정도?????   세례요한이 살고 간 그 시간, 그 요단강가에 몰려든 사람들! 그들은 지친 식민지 생활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꿈꾸며 간절히 원했을 것 같다.     세례요한에게 몰려든 모든 백성이 새로운 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간절한 열망을 향하여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새로운 삶’을 제시한다. 그리고 .... 그 몰려든 백성들은 요한의 요청대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우리는 주의 길을 어떻게 예비할 것인가?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3절]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3절]     우리는 어떻게 주의 길을 예비할 수 있는가?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것이 주의 길에 어울릴수 있을까? 무엇으로 가능한가? 세례요한이 안내하는데로 천천히 가보자. 그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돌이키고 회개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 종말론 적인 관점은 쉬운 말로 '임박한 마지막'을 의미한다. 지금 “내게 얼마남지 않은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1>우리에게 지금 얼마남지 않은 날들만 있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2>그러나 선택에 조건이 있다. 그것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어한다. 예수님과 어울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그리고 또하나의 조건은 지금까지 삶으로부터 돌아서는 특징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예수님과 어울리는 삶을 살고,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부터 돌이키는 것! 내안에 예수님과 어울리는 것은 무엇일까?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다음 2막에서 이어집니다..............

    by 이일례 2016.02.23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