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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필로그]

by이일례 2016.04.1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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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필로그]

 

우리는 세례 요한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례요한이 살고 간 그 시간, 그 요단강가에 몰려든 사람들!

지친 식민지 생활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꿈꾸던 그들에게 진리를 선포한 세례요한!

그리고 실제로.... 그 몰려든 백성들은 요한의 요청대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고

척박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수 있었던 사람들!

 

그 요단강 ..... 그 사람들 사이에, 그곳에 세례요한이 있었다.

세례요한은 진리의 길을 제시하는 자였다...

그가 전하는 진리는 "예수"였다.

 

그는 진리이신 예수를 전하기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친 사람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지킨 사람이었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고백하며 

주님께 주연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주의 영원한 조연의 위치에 선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세례요한처럼 주의 길을 예비하는

남다른 길을 걷고 싶지 않은가? 나는 남다른 길을 걷고 싶다.

 

 

진정한 주연으로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조연의 자리에 서야 한다.

예수께서 주연이고 우리는 조연이다. 세례요한 처럼 말이다.

....우리가 조연일 때 그 역할을 소명의식과 감사함속에 잘 감당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

"주의 길을 예비하라" 외치는 세례 요한의 길이 단지 조연처럼만 보이는가?

별로 근사하지 않아 보이는가? 정말그럴까?

우리가 주님의 조연이라면 생각은 달라진다.

 

나는 내 삶의 주연이지만 동시에 주님앞에서는 영원한 조연으로 살고 싶다.

그분이 나를 위한 그분의 생명을 주셨다는데 조연이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그분의 조연이라면 이미 충분히 황홀하지 않겠는가?

 

 

  1.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1]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   출 3장 1-12절   I. 도입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가? 혹은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얼마나 사랑하는가? 우리의 사랑의 방식은 무엇일까? 우리가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기전에 먼저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II. 본론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모세를 만나주신 하나님.....하나님은 모세를 향하여 ‘신을 벗으라!’ 말씀하신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명령하신다. 그분의 요청은 모세가 선곳이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다. 왜 거룩한 곳인가? 어떤 곳이 거룩한 곳인가? “왜 거룩한 곳을 상기 시키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계신 곳이면 거룩한 곳이다. 신을 벗으라는 명령에 관하여 학자들은 ‘본래의 상태 그대로의 발로 디뎌야 하는 곳’에서 신을 벗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경외심을 가지고 신을 벗어야 한다.... 그것이 다일까?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1-10절까지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 하나님 자신을 소개 하시고 당신의 계획을 브리핑하고 계신다.  그런데 매우 일방적이다!!!   "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 ....................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우리의 눈에 띄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개인적인 혹은 사적인 것에 관하여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분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앞만 보고하고 계신 것 같다.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뜻을 보여 주는 것일까?   하나님! 저기요~~ 여기 저 모세거든요ㅠㅠ 저는 몇십전 전에 히브리인을 보호하려다가 사람을 죽인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미디안 제사장 사위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거든요ㅠㅠ 저의 삶이 좀 누더기 걸친것 같거든요... 제가 지금 숨어지내는 신분이거든요ㅠㅠ   설상가상으로 하나님은 동문서답하는 것 같다...   12절에서 하나님의 응답은 이렇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여기까지!!!! 정말하나님은 동문서답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이아닐까????     다음에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by 이일례 2016.10.07 0 Comments
  2.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필로그]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에필로그]   우리는 세례 요한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례요한이 살고 간 그 시간, 그 요단강가에 몰려든 사람들! 지친 식민지 생활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꿈꾸던 그들에게 진리를 선포한 세례요한! 그리고 실제로.... 그 몰려든 백성들은 요한의 요청대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고 척박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수 있었던 사람들!   그 요단강 ..... 그 사람들 사이에, 그곳에 세례요한이 있었다. 세례요한은 진리의 길을 제시하는 자였다... 그가 전하는 진리는 "예수"였다.   그는 진리이신 예수를 전하기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친 사람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지킨 사람이었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고백하며  주님께 주연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주의 영원한 조연의 위치에 선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세례요한처럼 주의 길을 예비하는 남다른 길을 걷고 싶지 않은가? 나는 남다른 길을 걷고 싶다.     진정한 주연으로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조연의 자리에 서야 한다. 예수께서 주연이고 우리는 조연이다. 세례요한 처럼 말이다. ....우리가 조연일 때 그 역할을 소명의식과 감사함속에 잘 감당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 "주의 길을 예비하라" 외치는 세례 요한의 길이 단지 조연처럼만 보이는가? 별로 근사하지 않아 보이는가? 정말그럴까? 우리가 주님의 조연이라면 생각은 달라진다.   나는 내 삶의 주연이지만 동시에 주님앞에서는 영원한 조연으로 살고 싶다. 그분이 나를 위한 그분의 생명을 주셨다는데 조연이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그분의 조연이라면 이미 충분히 황홀하지 않겠는가?    

    by 이일례 2016.04.13 0 Comments
  3.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제 2막]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제 2막]   막 1장 1-8절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본보기로서 세례요한 모습을 보면........ 세례요한의 삶을 정리해보자! <1>메뚜기와 석청을 먹는다. <2>낙타털 옷을 입는다. 가죽 띠를 띤다..... <3>예수님과 관련하여 그는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고백한다. <4>그의 고백은  또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물로 세례를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길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광야에서 외친다는 의미에서]일상의 삶속에서 가난한자의 모습과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푼다는 의미에서]신앙의 모습, 진리를 증언하는 자의 삶의 모습으로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세례요한의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광야에서의 상황을... 가난하고 나약하고 세상과 거리가 먼 우울한 생활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다. 이것은 자신의 위치, 자신의 자리를 잘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의(큰 뜻을)위해서 작은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가슴속에 다 담아들수 없는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서 그는 기꺼이 광야로 가야 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아는 사람! 세례요한은 진리이신 예수의 길을 예배하는 삶을 살기위해서 늘 의연하고 당당하했다.     이전에 (2015년 3월 9일 경) 티비에서 안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이 일본 수상을 방문하는 모습이  몇 일간 뉴스의 화면을 장식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수행원은 수상을 우산으로 받치고 있었고 우산도 없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비맞는 다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통역사였다. 그 통역사는 최고의 엘리트이고 최고의 교육과 훈련은 받은 사람으로 자기 나라에게 가장 통역에 뛰어난 유능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수상옆에서 비를 쫄딱(?)맞고 가는 모습이 내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활을 잘 수행하기 위하여 그는 비맞는 것을 대수롭지 여기는 것 같았다.   자기 자리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모습이었이다.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자이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고백하는 세례요한 모습은 정말 주의 길을 예비하는자의 모습이다. 주님의 위치와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요한의 모습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by 이일례 2016.04.13 1 Comments
  4.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제 1막]

      세례요한의 삶 - 주의 길을 예비하라[제 1막] 막 1장 1-8절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가? 각각 좋아하는 타입들이 있겠지만 대략 3-5초 정도에 사람의 첫인상이 결정된다고 한다. 3-5초 사이에 저 사람이 사귀고 싶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이것이 ‘첫인상의 법칙’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외모를 치장하는데 공을 들인다. 그러나 첫인상의 함정은 늘 있기 마련이다. ......거두절미하고 누군가가 첫인상과 비례해서 그가 가진 내적인 부분까지 맘에 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겉과 속이 제대로인 사람을 소개 한다. 그의 이름은 세례요한이다.   세례요한은 그의 가슴속에 진리를 품은 사람이었다. 시대를 읽고 척박한 시대를 향하여 참 진리를 외치는 속이 찬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우리는 지금 두 번째 사순절을 보내면서 마가복음을 묵상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나는 사건은 마가복음 1장의 세례요한의 이야기이다.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말하고 있다. 세례요한의 삶과 그가 외치는 ‘주의 길을 예비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세례요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세례를 베푼 것이다. 요한이 세례를 주었다는 사실에 많은 비중을 두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름 요한에 세례가 덧 붙여 있다. 그리고 그가 준 세례는 임박한 종말론적 심판을 지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 그의 모습중에 우리의 눈에 띄는 것은 요한의 설교에 대해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왔다는 점이다.   역사학자 요세푸스도 강력한 민중운동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백성들이 세례 요한의 설교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본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을까? 백성들은 무엇에 이끌리어 이처럼 세례요한에게 나아왔는가? 그들은 무엇을 꿈꾸며 나아왔을까?     한가지씩 짚어보자! 지금 우리 사회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웬만한 일에는 감동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불감증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광경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가끔 볼수 있는 장면이 맛집에 줄서있는 정도?????   세례요한이 살고 간 그 시간, 그 요단강가에 몰려든 사람들! 그들은 지친 식민지 생활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꿈꾸며 간절히 원했을 것 같다.     세례요한에게 몰려든 모든 백성이 새로운 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간절한 열망을 향하여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새로운 삶’을 제시한다. 그리고 .... 그 몰려든 백성들은 요한의 요청대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우리는 주의 길을 어떻게 예비할 것인가?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3절]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3절]     우리는 어떻게 주의 길을 예비할 수 있는가?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것이 주의 길에 어울릴수 있을까? 무엇으로 가능한가? 세례요한이 안내하는데로 천천히 가보자. 그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돌이키고 회개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 종말론 적인 관점은 쉬운 말로 '임박한 마지막'을 의미한다. 지금 “내게 얼마남지 않은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1>우리에게 지금 얼마남지 않은 날들만 있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2>그러나 선택에 조건이 있다. 그것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어한다. 예수님과 어울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그리고 또하나의 조건은 지금까지 삶으로부터 돌아서는 특징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예수님과 어울리는 삶을 살고,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부터 돌이키는 것! 내안에 예수님과 어울리는 것은 무엇일까?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다음 2막에서 이어집니다..............

    by 이일례 2016.02.23 0 Comments
  5. 나오미의 터닝 포인트[에필로그]

      나오미의 터닝 포인트 <에필로그>     터닝 포인트를 경험한 그녀의 목적지가 분명해지고... 희망을 꿈꾸며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가 있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6절),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그들을 돌려보낸다.   이 본문을 보면... 나오미가 처음부터 홀로 길을 나선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오려하는 시점에서 그녀는 며느리들과 함께 살림을 정리했으리라... 그리고 두 며느리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오는 길목에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다음과 같이 강권하여 고백한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13절)   두 며느리의 삶을 근심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나오미의 관점에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나오미가 처음부터 홀로 길을 나선 것이 아닌것을 볼때   그녀의 터닝포인트 이후, 그녀의 관점이 바로 변화된것은 아닌것 같다. ..... 사람이 어떻게 금방 달라 질수 있겠는가?   조금씩 ...그러나 멈추지 않고... 그녀는 달라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오미는 분명히 달라졌다.   나오미 그녀는 이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오미의 터닝포인트가 우리에게 주는 또하나의 신앙의 메시지는 하나님을 만난사람들의 현상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이웃을 돌보는 눈과 마음으로 변화 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나오미는 이런 변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녀는 베들레헴을 돌아온후 함께 온 며느리 룻을 돌보기위해 아름답고 당찬 계획들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나오미는 그녀의 당찬 계획들이 시작하기전... 자신의 정체성을 또한번 단단히 자리매김한다.   실제로 나오미는 추수를 시작할때에 베들레헴으로 귀향한다.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를 환영하는 아줌마 부대들을 향하여, 나오미는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0-21절)라고 고백이한다. 이상하다. 그녀가 풍족하게 나갔는가? 흉년을 피해 나간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한 것일까? ..............   나오미 가족은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피난을 갔었다. 흉년을 피해 피난가는 가족이 풍족하게 나갈일이 없지않은가? 현상은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 현상속에서 나오미가 그녀의 삶을 해석하는 내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풍족이란 의미는 무엇일까? 그때 그녀에게는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있었다. 그리고 흉년을 피할 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로 체워져 있었다. 그모스신을 섬기는 지역인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체워져 있었을 것 같다. 혹 그 가족들은 '신앙은 지키면 되지 ....'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모압여인 오르바와 룻을 며느리로 들인다...   신앙을 지켜가지는 못한 것 같다. ........... 그녀는 많은 것들을 잃었다... 모든 것을 잃은 나오미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같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0-21절)     우리는 여기 나오미의 고백속에서... 어려운 삶의 뒤안길을 걸어온 성숙한 모습을 본다   모든것을 잃은 것같지만 비로서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여인 나오미, 모든것을 잃은 것같지만 진리가운데 새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여인 나오미, 실제로 그녀는 분주히 하나님과 함께 그녀의 삶을 시작한다. 모압이 아닌 베들레헴에서 그녀는 하나님과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우리가 닮고 싶은 신앙의 선배로 우리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다.      

    by 이일례 2016.02.16 0 Comments
  6. 나오미의 터닝 포인트[제2막]

      나오미의 터닝 포인트 <제2막>   -터닝 포인트의 목적지-   나오미는 터닝포인트 경험으로 .... 그녀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터닝 포인트를 경험한 그녀의 목적지가 분명해진다.   그리고 나오미는 달라졌다. 어떤 여자로 달라 진 것일까? 그녀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생겼다. 그녀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한다.   나오미는 사실상 모든 것을 잃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 쪽팔릴 수 도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그냥 모압에 머물러 살아도 그만 이었다. 애시 당초 나오미는 데리고 있는, 남겨져 있는 며느리 둘에게도 강권해서 각각 그들 어머니집으로 돌아가기를 권했다.   그녀는 왜 다시 돌아오려고 했을까?   쪽팔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단지 그녀가 있을 곳이 어디인지를 알고 실천하는 여인이었다. 명분만을 앞에 두는 여인이 더이상 아니었다. 체면을 앞에 두는 여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어떤가? ..... 우리는 체면을 그럴싸하게 ‘명예’라는 말로 바꾸어 말하기도 한다. 나오미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나오미는 10년동안...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 이상 희망을 바라볼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새로운 삶을, 회복을 꿈꾸며 희망하는 여인이었다.   무엇이 중요한가! 지난 과거보다 더 중요한것은 살아갈 오늘 ... 꿈꿀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오늘 나오미는 우리를 향하여 말해주고 있다...     다음........에필로그에서 이어집니다.   ...............

    by 이일례 2016.02.08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