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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오미의 터닝 포인트[에필로그]

by이일례 2016.02.16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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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의 터닝 포인트 <에필로그>

 

 

터닝 포인트를 경험한 그녀의 목적지가 분명해지고...

희망을 꿈꾸며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가 있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6절),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그들을 돌려보낸다.

 

이 본문을 보면...

나오미가 처음부터 홀로 길을 나선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오려하는 시점에서 그녀는 며느리들과 함께 살림을 정리했으리라...

그리고 두 며느리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오는 길목에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다음과 같이 강권하여 고백한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13절)

 

두 며느리의 삶을 근심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나오미의 관점에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나오미가 처음부터 홀로 길을 나선 것이 아닌것을 볼때

 

그녀의 터닝포인트 이후,

그녀의 관점이 바로 변화된것은 아닌것 같다.

.....

사람이 어떻게 금방 달라 질수 있겠는가?

 

조금씩 ...그러나 멈추지 않고... 그녀는 달라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오미는 분명히 달라졌다.

 

나오미 그녀는 이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오미의 터닝포인트가 우리에게 주는 또하나의 신앙의 메시지는

하나님을 만난사람들의 현상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이웃을 돌보는 눈과 마음으로 변화 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나오미는 이런 변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녀는 베들레헴을 돌아온후 함께 온 며느리 룻을 돌보기위해

아름답고 당찬 계획들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나오미는 그녀의 당찬 계획들이 시작하기전...

자신의 정체성을 또한번 단단히 자리매김한다.

 

실제로 나오미는 추수를 시작할때에 베들레헴으로 귀향한다.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를 환영하는 아줌마 부대들을 향하여,

나오미는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0-21절)라고 고백이한다.

이상하다.

그녀가 풍족하게 나갔는가? 흉년을 피해 나간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한 것일까?

..............

 

나오미 가족은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피난을 갔었다.

흉년을 피해 피난가는 가족이 풍족하게 나갈일이 없지않은가?

현상은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 현상속에서 나오미가 그녀의 삶을 해석하는 내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풍족이란 의미는 무엇일까?

그때 그녀에게는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있었다.

그리고 흉년을 피할 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로 체워져 있었다.

그모스신을 섬기는 지역인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체워져 있었을 것 같다.

혹 그 가족들은 '신앙은 지키면 되지 ....'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모압여인 오르바와 룻을 며느리로 들인다...

 

신앙을 지켜가지는 못한 것 같다.

...........

그녀는 많은 것들을 잃었다...

모든 것을 잃은 나오미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같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0-21절)

 

 

우리는 여기 나오미의 고백속에서...

어려운 삶의 뒤안길을 걸어온 성숙한 모습을 본다

 

모든것을 잃은 것같지만 비로서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여인 나오미,

모든것을 잃은 것같지만 진리가운데 새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여인 나오미,

실제로 그녀는 분주히 하나님과 함께 그녀의 삶을 시작한다.

모압이 아닌 베들레헴에서 그녀는 하나님과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우리가 닮고 싶은 신앙의 선배로 우리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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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도행전 5장38-42; 두 가지 조건

        사도행전 5장38-42; 두 가지 조건       우리 각자가 집을 짓는다고 하자. 집을 지을 장소, 그곳이 해변가인지 숲속인지...혹은 시골 한적한 곳인지... 도심지인지 다를 것이고 또한 짓는 방식과 사용되는 제제와 색채 등등이 천차만별로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집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동일할 것이다. 집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너지지 않는 안전함이지 않을까? 특별히 우리 각각의 인생을 집을 짓는 것으로 비교해보자. 우리의 인생도 이와같다... 가장 안전한 삶...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날 때 후회 없는 삶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헤르만 헷세의 소설 ‘싯타르타’를 아는가? 예를 들면 헤르만 헷세는 그의 소설, ‘싯타르타’에서 삶을 사랑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도들을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을까? 사도행전 5장은 38-3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그렇다면 사람으로부터 나서 무너지는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무너지지 않고 안전한 삶은 무엇일까? 사도행전 5장은 두가지 사건으로 설명한다.   [본론] 여기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두 가지 사건이 등장한다. 1-11절까지의 첫 번째 사건과 12절이후 두 번째 사건이 그렇다. 12절이후 두 번째 사건의 사건을 먼저 설명해 보자.   12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인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한다.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이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란다.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는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   사도행전 5장20절에서,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말한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사도행전 5장21절에서,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친다. 그들이 정말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기 전에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여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옥문을 열고 ‘사도들아 수고한다. 내가 하나님의뜻에 따라 문을 여는것이니 어서 나오거라...’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끌어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끌어내다라는 헬라어는 ‘evxagagw,n ’이다. 무슨 뜻일까?(führte sie hinaus, taking them)   새벽에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사건의 경과를 알리 없는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한다.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2. 사도행전 5장은 그 유명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부부이다. 그들은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에 두기로 부부끼리 결정한 것 같다. 그런데 이들 부부의 끝은 죽음이었다. 그런일에 죽음으로 갚는다면, 그런 하나님은 이해하기 힘들다. 정말 이것을 말하는 것일까? 주석서들의 노력들이 가히 칭찬할 만하다.   [결론 및 적용] 우리는 사도행전 5장의 2가지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1. 두사건의 중심에게는 가장 특징적인 핵심어가 있다. 1.1 첫 번째 사건에서는,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에 두기로 하고 사도들에게 가져오자, 베드로가 정색을 하고 말한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장 3절) 여기서 볼수 있는 것처럼 첫 번째 사건에서 베드로는 아나니야를 향하여, “사탄이 네마음에 가득하다”고 말하고 있다. 3절에서 베드로는 먼저 아나니야를 향하여 ‘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그리고 이어서 9절에서 베드로는 그의 아내 삽비라를 향하여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sunefwnh,qh;sumfwne,w agree;)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 이처럼 우리안에 하나님을 두지 않는순간 그곳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사탄이 가득 체우고 우리를 하나님을 속이는자 성령을 속이는자(3절)로 만든다. 1.2 그렇다면, 두 번째 사건의 핵심어는 무엇일까? 그것은 29절에서 찾을수 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

    by 이일례 2017.05.23 1 Comments
  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출 3장 1-12절   거룩한곳이니 신을 벗으라는 것은...... ‘신을 벗으라!’ 본래의 상태 그대로의 발로 디뎌야 하는 곳; 경외심을 가지고 신을 벗어야 한다.  왜 거룩한 곳인가? 하나님이 나타날 때 동반하는 자연현상... 그것 때문일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위한 효과 음향만은 아닐 것이다.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선곳을 거룩한 곳으로 선언하며 ‘신을 벗으라!’라고 명령하시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의 얼굴을 가리우는 상황, 그것을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장인 미디안 제사장이 섬기는 다른 신.... 그리고 살인자의 삶....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은 그를 괴롭게도 힘들게도 ...그를 껌딱지처럼 따라다니는 “....이런사람”이란 꼬리 표를 내려 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방식이다!! 여러분에는 어떤 꼬리표가 있는가?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 꼬리표를 내려 놓아야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어떤 꼬리표가 있을까? 우리 젊은이들은 열심히 산다. 헬조선이란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인정하고 살아도 실패는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 뜻하지 않게 다른 방향을 향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가? 우리가 부끄러운 꼬리표를 갖게 될 때에도 혹은 실패할때에도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하여 하고 계시는 말씀, ‘신을 벗으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질퍽한신..도무지 걸을수 없는 신을 왜 신고 있는가? ‘신을 벗으라!’ 라는 말에 순종하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은 우리를 새로 시작할수 있도록 한다!! 모세처럼 말이다!!          

    by 이일례 2017.01.20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