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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여호수아일까? [에필로그]

by이일례 2016.01.2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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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호수아일까? [에필로그]

 

민수기 27장 18절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갈렙이 아니라 여호수아인이유...

하나님은 " 여호수아,그 안에 영이 머무는자"라고 말씀하시고...

모세에게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그를 안수하고

그를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수장으로 세우게 하신다

 

그렇다면...

" 여호수아,그 안에 영이 머무는자 "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서에 나타나는 여호수아의 삶을 들여다 봄으로 이에 답할 수 있다.

성서에서 여호수아는 언제부터 등장할까?

 

여호수아는 출애굽기 17장에서 처음 등장한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르비딤 광야를 지나 첫번째로 치룬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모세 휘하에서 군대를 영솔하는 장군이었다.

 

출애굽기 24장에서는 모세가 “그의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갔다”

 이때 여호수아는 모세와 동승하게 되고.... 40일 동안 산 위에서  모세를 기다린다.

 

32장에서 모세가 산에서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 올 때 여호수아는 모세오 함께 했다.

 

여호수아는 모세곁에서 늘 훈련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자였다.

모세보다 앞서지 않았다.

모세가 이스라엘 수장으로 그의 역활을 할수 있도록

늘 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자였다.

 

하나님께서 이런 여호수아를 지켜 보았을리라!

하나님께서 이런 여호수아의 마음을 아셨으리라!

 

여호수아는 실제로 그의 사역을 어떻게 시작하고 있는가?

여전히 그는 자신의 자리를 아는 자였다.

 

여호수아서 1장에 보면 전반부를 살펴보자![1-9절]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삶과 신앙을 상기 시킨다.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내종 모세가 죽었으니....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여호수아에게는 Vorbild가 있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일하심을 배운 여호수아 였다.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인지.......[민 14장 34-35절]

모세의 삶을 통해서 배웠다.

 

여호수아서 1장에 보면 후반부를 살펴보자![10-18절]

여호수아서 1장 11절 여호수아가 전쟁을 앞두고 ...

가장먼저 준비시키는 것이 “양식”이다.

그리고 나서 그 후에야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을 “양식”과 구별되는 사람,

그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착각이다!!

여호수아의 모습을 보면서...생각한다....

하나님은 현실적으로 좀더 치밀한 자를 세우길 원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자리와 하나님의 자리를 지키는자의 모습이 아닐까?

 

믿음은 ....

우리의 자리는....

영적으로 고양되어 있어....

모든 것이 눈깜짝할 사이 이루어질 것같이 생각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착각이다.

여호수아는 오늘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사람 여호수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라 말씀하신다.

 

전쟁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하나님이지만

우리가 무디어진 칼을 갈지 않으면,

우리의 손상된 값옷을 손질하지 않으면,

더군다나 전쟁에 필요한 양식을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허상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자리는 하나님께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영적인자의 모습이다.

여호수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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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이일례 2017.05.23 1 Comments
  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2]   출 3장 1-12절   거룩한곳이니 신을 벗으라는 것은...... ‘신을 벗으라!’ 본래의 상태 그대로의 발로 디뎌야 하는 곳; 경외심을 가지고 신을 벗어야 한다.  왜 거룩한 곳인가? 하나님이 나타날 때 동반하는 자연현상... 그것 때문일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위한 효과 음향만은 아닐 것이다.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선곳을 거룩한 곳으로 선언하며 ‘신을 벗으라!’라고 명령하시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의 얼굴을 가리우는 상황, 그것을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장인 미디안 제사장이 섬기는 다른 신.... 그리고 살인자의 삶....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은 그를 괴롭게도 힘들게도 ...그를 껌딱지처럼 따라다니는 “....이런사람”이란 꼬리 표를 내려 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방식이다!! 여러분에는 어떤 꼬리표가 있는가?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 꼬리표를 내려 놓아야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어떤 꼬리표가 있을까? 우리 젊은이들은 열심히 산다. 헬조선이란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인정하고 살아도 실패는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 뜻하지 않게 다른 방향을 향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가? 우리가 부끄러운 꼬리표를 갖게 될 때에도 혹은 실패할때에도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하여 하고 계시는 말씀, ‘신을 벗으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질퍽한신..도무지 걸을수 없는 신을 왜 신고 있는가? ‘신을 벗으라!’ 라는 말에 순종하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은 우리를 새로 시작할수 있도록 한다!! 모세처럼 말이다!!          

    by 이일례 2017.01.20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