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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1. 나오미의 터닝 포인트[에필로그]

      나오미의 터닝 포인트 <에필로그>     터닝 포인트를 경험한 그녀의 목적지가 분명해지고... 희망을 꿈꾸며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가 있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6절),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그들을 돌려보낸다.   이 본문을 보면... 나오미가 처음부터 홀로 길을 나선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오려하는 시점에서 그녀는 며느리들과 함께 살림을 정리했으리라... 그리고 두 며느리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오는 길목에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다음과 같이 강권하여 고백한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13절)   두 며느리의 삶을 근심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나오미의 관점에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나오미가 처음부터 홀로 길을 나선 것이 아닌것을 볼때   그녀의 터닝포인트 이후, 그녀의 관점이 바로 변화된것은 아닌것 같다. ..... 사람이 어떻게 금방 달라 질수 있겠는가?   조금씩 ...그러나 멈추지 않고... 그녀는 달라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오미는 분명히 달라졌다.   나오미 그녀는 이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오미의 터닝포인트가 우리에게 주는 또하나의 신앙의 메시지는 하나님을 만난사람들의 현상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이웃을 돌보는 눈과 마음으로 변화 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나오미는 이런 변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녀는 베들레헴을 돌아온후 함께 온 며느리 룻을 돌보기위해 아름답고 당찬 계획들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나오미는 그녀의 당찬 계획들이 시작하기전... 자신의 정체성을 또한번 단단히 자리매김한다.   실제로 나오미는 추수를 시작할때에 베들레헴으로 귀향한다.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를 환영하는 아줌마 부대들을 향하여, 나오미는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0-21절)라고 고백이한다. 이상하다. 그녀가 풍족하게 나갔는가? 흉년을 피해 나간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한 것일까? ..............   나오미 가족은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피난을 갔었다. 흉년을 피해 피난가는 가족이 풍족하게 나갈일이 없지않은가? 현상은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 현상속에서 나오미가 그녀의 삶을 해석하는 내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풍족이란 의미는 무엇일까? 그때 그녀에게는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있었다. 그리고 흉년을 피할 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로 체워져 있었다. 그모스신을 섬기는 지역인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체워져 있었을 것 같다. 혹 그 가족들은 '신앙은 지키면 되지 ....'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모압여인 오르바와 룻을 며느리로 들인다...   신앙을 지켜가지는 못한 것 같다. ........... 그녀는 많은 것들을 잃었다... 모든 것을 잃은 나오미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같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0-21절)     우리는 여기 나오미의 고백속에서... 어려운 삶의 뒤안길을 걸어온 성숙한 모습을 본다   모든것을 잃은 것같지만 비로서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여인 나오미, 모든것을 잃은 것같지만 진리가운데 새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여인 나오미, 실제로 그녀는 분주히 하나님과 함께 그녀의 삶을 시작한다. 모압이 아닌 베들레헴에서 그녀는 하나님과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우리가 닮고 싶은 신앙의 선배로 우리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다.      

    by 이일례 2016.02.16 0 Comments
  2. 나오미의 터닝 포인트[제2막]

      나오미의 터닝 포인트 <제2막>   -터닝 포인트의 목적지-   나오미는 터닝포인트 경험으로 .... 그녀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터닝 포인트를 경험한 그녀의 목적지가 분명해진다.   그리고 나오미는 달라졌다. 어떤 여자로 달라 진 것일까? 그녀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생겼다. 그녀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한다.   나오미는 사실상 모든 것을 잃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 쪽팔릴 수 도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그냥 모압에 머물러 살아도 그만 이었다. 애시 당초 나오미는 데리고 있는, 남겨져 있는 며느리 둘에게도 강권해서 각각 그들 어머니집으로 돌아가기를 권했다.   그녀는 왜 다시 돌아오려고 했을까?   쪽팔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단지 그녀가 있을 곳이 어디인지를 알고 실천하는 여인이었다. 명분만을 앞에 두는 여인이 더이상 아니었다. 체면을 앞에 두는 여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어떤가? ..... 우리는 체면을 그럴싸하게 ‘명예’라는 말로 바꾸어 말하기도 한다. 나오미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나오미는 10년동안...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 이상 희망을 바라볼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새로운 삶을, 회복을 꿈꾸며 희망하는 여인이었다.   무엇이 중요한가! 지난 과거보다 더 중요한것은 살아갈 오늘 ... 꿈꿀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오늘 나오미는 우리를 향하여 말해주고 있다...     다음........에필로그에서 이어집니다.   ...............

    by 이일례 2016.02.08 0 Comments
  3. 나오미의 터닝 포인트[제1막]

      나오미의 터닝 포인트 <제1막> 룻 1장6-22절   우리는 살아오면서 turning point를 경험한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만족하는가?   질문을 좀 다르게 해보자... 어떻게 달라지기를 원하는가? 오늘 한 여인의 터닝 포인트를 소개하려고 한다.   어느날 모압땅 한 마을에 아들 둘을 가진 이스라엘 가정이 이사를 왔다. 들어보니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크게 흉년이 들었단다. 그래서 남편 엘리멜렉이란 사람과 아내 나오미라는 여인은 두 아들을 데리고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피난을 온 것이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삶을 통해서 우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그때 당시 베들레헴에서 모압까지의 이동이 어떠했을까? 어려웠는가? 베들레헴과 모압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왜 하필이면 모압이었을까?     그리고 모압 지방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그모스신을 섬기는 이방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족은 10년을 모압에 거주했다.   궁금하다. 흉년을 피하는 것은 잠깐이면 될텐데..........왜 10년 이상의 시간을 그들은 모압에서 보냈을까?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 쉬운거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할텐데...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하여 답을 줄 수 있는 어떤 본문도 룻기서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1장 6절에서...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특별한 상상을 하는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본문은 실제로 나오미 가정이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갔고(1장1절).......... 또 그문제가 해결되자 돌아오는 것으로 볼수 있다(1장6절).   이상한 일이 있다. 궁금한 일이 있다. 1장 1-5절까지의 이야기는 10년 이상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 본문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나오미가 한일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6절에서 비로소.....“그 여인이 ..............듣고......”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6절)   그여인이 들은 것은 베들레헴에 다시 풍년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아니다. 흉년인지 풍년인지 알길이 없지만..........중요한 것은, 그 여인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은 것이다. 먹거리가 생긴 것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것으로 든는 것이다.   여기 나오미의 터닝포인트가 시작한다. 나오미는 평범한 사건과 자연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사건을 듣는다. 하나님의 일로 해석하는 것이다.   .........제 2막에서 이어집니다.............  

    by 이일례 2016.02.01 1 Comments
  4. 왜 여호수아일까? [에필로그]

        왜 여호수아일까? [에필로그]   민수기 27장 18절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갈렙이 아니라 여호수아인이유... 하나님은 " 여호수아,그 안에 영이 머무는자"라고 말씀하시고... 모세에게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그를 안수하고 그를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수장으로 세우게 하신다   그렇다면... " 여호수아,그 안에 영이 머무는자 "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서에 나타나는 여호수아의 삶을 들여다 봄으로 이에 답할 수 있다. 성서에서 여호수아는 언제부터 등장할까?   여호수아는 출애굽기 17장에서 처음 등장한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르비딤 광야를 지나 첫번째로 치룬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모세 휘하에서 군대를 영솔하는 장군이었다.   출애굽기 24장에서는 모세가 “그의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갔다”  이때 여호수아는 모세와 동승하게 되고.... 40일 동안 산 위에서  모세를 기다린다.   32장에서 모세가 산에서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 올 때 여호수아는 모세오 함께 했다.   여호수아는 모세곁에서 늘 훈련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자였다. 모세보다 앞서지 않았다. 모세가 이스라엘 수장으로 그의 역활을 할수 있도록 늘 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자였다.   하나님께서 이런 여호수아를 지켜 보았을리라! 하나님께서 이런 여호수아의 마음을 아셨으리라!   여호수아는 실제로 그의 사역을 어떻게 시작하고 있는가? 여전히 그는 자신의 자리를 아는 자였다.   여호수아서 1장에 보면 전반부를 살펴보자![1-9절]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삶과 신앙을 상기 시킨다.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내종 모세가 죽었으니....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여호수아에게는 Vorbild가 있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일하심을 배운 여호수아 였다.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인지.......[민 14장 34-35절] 모세의 삶을 통해서 배웠다.   여호수아서 1장에 보면 후반부를 살펴보자![10-18절] 여호수아서 1장 11절 여호수아가 전쟁을 앞두고 ... 가장먼저 준비시키는 것이 “양식”이다. 그리고 나서 그 후에야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을 “양식”과 구별되는 사람, 그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착각이다!! 여호수아의 모습을 보면서...생각한다.... 하나님은 현실적으로 좀더 치밀한 자를 세우길 원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자리와 하나님의 자리를 지키는자의 모습이 아닐까?   믿음은 .... 우리의 자리는.... 영적으로 고양되어 있어.... 모든 것이 눈깜짝할 사이 이루어질 것같이 생각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착각이다. 여호수아는 오늘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사람 여호수아를 통해서 우리에게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라 말씀하신다.   전쟁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하나님이지만 우리가 무디어진 칼을 갈지 않으면, 우리의 손상된 값옷을 손질하지 않으면, 더군다나 전쟁에 필요한 양식을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허상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자리는 하나님께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영적인자의 모습이다. 여호수아처럼 말이다.      

    by 이일례 2016.01.29 0 Comments
  5. 왜 여호수아일까? [제 2막]

      왜 여호수아일까? [제 2막]   민수기 14장으로 가보자 사건은 절정에 달한다.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한다. 그리고 늘 하던것처럼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정은 “새로운 지도자를 새워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때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앞에 엎드린다. 이때 옷을 찢고 온 회중을 향하여 갈렙과 여호수아가 등장하여 다시 가나안 땅과 여호와의 뜻을 상기 시킨다. 물론 이때 이를 적극적으로 행하는 자가 갈렙인지 여호수아인지... 알수 없다.   그리고 민수기 14장의 24절에서 그러나 내종 갈렙은....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기서 언급되는 것은 “내 종 갈렙”뿐이다. 여호수아는 언급되지 않는다.   14장 끝자라에서 비로서 원망하는 백성들을 벌하는 내용에서 비로소 여호수아가 언급된다. 30절에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정탐 사건은 출애굽 이후 2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이다.   ............여호수아는 민수기 26장 65절에 다시 등장하고....   오늘 우리의 설교 본문 27장에서 모세의 후계자로 서게된다.   갈렙이 아니고 왜 여호수아 일까? 궁금해졌다. 갈렙보다 소극적으로 보이는 여호수아... 정탐후 보고하는 과정에서도 흥분한 민중을 가라 앉히는 과정에서도 도무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여호수아였는데........   왜 하나님은 갈렙이 아닌 여호수아를 세우시는 것일까?   민수기 27장 18절에서는 " 여호수아,그 안에 영이 머무는자 "라고 표현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까? '루아흐'로 표현되어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 여호수아,그 안에 영이 머무는자 "를 우리는 여호수아의 삶을 통해서 접근해 볼수 있다.   ..............다음 에필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by 이일례 2016.01.26 0 Comments
  6. 왜 여호수아일까? [제 1막]

      왜 여호수아일까? [제1막]   민 27:15-20민 27:15-20     민수기 27장은 출애굽한 백성들을 지도해야하는 두 번째 수장으로 여호수아가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어떻게 된것일까? 그가 모세를 이어 두 번째 수장으로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왜 여호수아 일까? 민수기 13장의 분위기와 상황을  봐서는 갈렙이어야 할 것같은데....왜 여호수아 일까? 우리는 어떻게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일은 늘 이렇다!! 우리가 상상하고 예상하는 데로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두들 궁금할텐데........... 처음부터 차분히 출발해보자!!   모세가 가나안으로 정탐꾼을 보내는 사건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모세가 출애굽이후 가나안에 12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12명의 정탐꾼을 보내는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40일 동안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서 전하는 한결같은 이야기는 ‘ 불가능하다’는 부정적인 이야기... 그러나 이들과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만 구별되게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전한다는 이야기....   그럴까?   실제로............민수기 13장은 가나안 정탐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하고 있다. 민13장의 내용은 모세가 출애굽이후 가나안으로 12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12명의 정탐꾼을 보내는 사건으로 시작되며 그리고 그들이 40일 동안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서 전하는 이야기로 끝난다. 물론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의 보고와 이에 흥분하는 회중들... 그리고 그들을 조용히 시키고자 노력하며 ..... ‘자신감에 찬’ 승리의 예견을 이야기하는 갈렙이 등장한다.   모세가 요청한 내용대로 정탐꾼은 정탐에 다녀와 그 요청에 근거하여 보고하고 있다. 그런데 듣고 있는 백성들이 술렁이기 시작 한다. 그리고 그 백성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갈렙이 등장하고... 이에 10명의 정탐꾼들이 정탐한 땅을 악평하기 시작한다.   정탐꾼들이 정탐내용을 보고 할때에는 사실보고에 충실했지..악평하지 않았다. 그들은 백성들의 소동에 동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일이 벌어지는 동안 여호수아는 아무런 Reaction를 취하지 않는다. 그는 13장에 정탐꾼의 이름 목록에만 등장할뿐이다. 정탐이후의 사건을 보고하는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백성들이 소동을 일으키기 시작할때도 그들을 진정시키고 있는 것은 갈렙이다. 이에 10명의 정탐꾼들이 정탐한 땅을 악평하기 시작할때에도 그들과 맞서는 것은 여전히 갈렙이다.   여호수아는 어디있는 것일까?     ................제 2막에서 이어집니다........

    by 이일례 2016.01.26 1 Comments